네팔 생활 18년 ‘산꾼의 딸’ 정혜희씨
  • 등록일201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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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부터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 봉우리들을 눈망울에 담으면서 자란 사람. 한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산악인들을 ‘OOO 아찌’라고 부르던 사람. 어쩌면 한국 최연소 히말라야 트레킹 기록을 보유한 사람. 만 나이로 24세에 불과한 정혜희씨에 관한 이야기다.
정혜희씨는 26년째 네팔에서 살며 주네팔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바 있고, 지난해 12월 네팔에 ‘네파’ 장비점을 오픈한 ‘네팔 통신원’ 정용관씨의 무남독녀다.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네팔에서 살아온 탓에 본인의 유년시절도 네팔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터. 하지만 그는 덕분에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네팔에 원정 오는 산악인들을 어린 시절부터 자주 봤어요. 잘 대해주시고 많이 귀여워해주셔서 ‘아찌’들이 저희 집에서 원정용 김치를 담그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른 집에 가고 싶었죠.”
국내 산악인 뿐 아니다. 당시 정혜희씨는 누군지도 모르고 만났지만 에드먼드 힐러리, 라인홀트 메스너, 크리스 보닝턴 등 해외의 유명 산악인들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네팔에서 자란 덕에 유명 인사들이 그를 찾아 온 경우가 된 것. 어릴 적 기억이라 큰 감회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주변에 가족과 친구, 산만 있었기에 지금처럼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명 해외, 국내 산악인들도 알게 되고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만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산꾼’이 늘 마음에 두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보며 자랐다는 점이 가장 부럽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해보고 싶어도 시간과 돈의 제약이 있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포터의 바구니에 실려 트레킹을 해 본 희귀한 경험이 있고, 원정 온 ‘아찌들’을 따라 원정대의 베이스캠프까지 따라 간 적도 많았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지리산, 설악산, 북한산을 찾듯이 히말라야의 산들을 다녔던 것이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16세 때 청소년오지탐사대의 통역 겸 가이드를 맡은 적도 있다.
네팔의 외국인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정씨는 학교에서는 영어, 친구들과는 네팔어,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며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과 네팔을 매일 넘나든 것과 다름없기에 한국과 네팔의 차이점을 체험으로 느끼고 있다.
“한국 사람들과 네팔 사람들이 가족을 중요시한다는 점은 비슷해요. 다만 가장 큰 문화의 차이점은 한국은 빠르고 네팔은 느리다는 거랄까. 또 네팔 사람들은 아주 심플한 일에도 만족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풀코스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점을 알게 된 건 정씨에게는 오히려 낯선 한국 산에서다. 태어날 때부터 국적은 한국이었지만 한국의 산 경험은 도봉산이 전부. 도봉산을 한 번 올라본 그는 한국의 등산에 대해 “고속도로를 가듯 오르고 내려와 밥 먹는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의미를 두고 가는 것이 아닌 스피드 트레킹의 느낌”이라고 말한다. 또한 문화적 차이도 보여 한국 등산객들이 높은 가격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양한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많이 발전했다는 걸 느꼈다고. 최근 국내에 불고 있는 아웃도어 열풍이 해외 체류 한국인인 그에게는 새로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네팔에서 고등교육까지 마친 정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05년부터 미국 오레곤 주에 있는 루이스앤클라크 사립대학을 다녀 2009년 졸업했다. 대학 졸업후 1년간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 작년인 2010년 여름. 한국 국적을 지닌 한국 사람이지만, 유년시절 방학 때 한국의 친지들을 방문한 것 외의 한국 생활은 작년 여름부터 올해까지가 전부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영어 강사 일도 하고 한국의 아웃도어 업체에 근무하며 여러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생애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냈다보니 한국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그래도 그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의 자랑스러운 점을 많이 찾아냈고, 이제부터 모국인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고 한다. 그런 그가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은 ‘오방색 프로젝트’라는 활동이다. 오방색 프로젝트는 한국계 미국인 벤슨 리(영화 <플래닛비보이> 제작자)가 주최하는 세계인들의 파티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자는 취지로 여러 행사를 벌이는 모임이다.
“한국에 살고 싶으면서도 막상 지내다 보면 네팔 친구들도 보고 싶고 대학생활을 보냈던 미국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앞으로도 어느 한 나라에서 살지는 못할 것 같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고 싶어요. 그러면서 두 나라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정용관씨와 정혜희씨(우). 정씨는 아버지 덕에 "네팔에서 살며 지금처럼 자랄 수 있었던 게 복" 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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