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리대산악부 출신 이도원 서울대환경대학원장
  • 등록일201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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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건물인 82동에는 다른 교사에선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바로 옥상 정원. 계단을 올라 옥상 문을 밀고 나가면 관악산과 바로 마주한 시원한 풍경과 더불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화단과 벤치들이 사뭇 어느 정원에 온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도원 교수가 환경대학원장에 취임하며 바뀐 풍경이다. 서울대학교 식물학과 71학번으로 재학생시절 문리대산악부 활동을 했던 그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외대를 거쳐 1992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오다 지난 2월 대학원장에 취임했다. 매일 관악산을 넘어 1시간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한다는 이도원 교수는 연구실의 학자라기보다 여느 산에서 마주치는 아저씨 같은 인상이지만 명실공이 우리나라 환경생태학계의 권위자다. 어쩌면 ‘산’이라는, 그에게 박힌 뿌리가 책속의 지식보다 대자연의 지혜를 닮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그랬다.

서울문리대산악부 출신으로 서울대환경대학원장에 취임한 이도원 교수.

“산 다니는 것하고 전공하고 딱 맞았죠. 취미가 곧 연구 분야가 된 거죠. 젊었을 적에는 한동안 점봉산에서 자연숲을 연구하는 등 이산 저산 다니곤 했는데, 요즘은 우리나라 전통 마을숲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 때까지 지게 지고 소 키우는, 농촌 소년의 삶을 살았다. 늘 자연의 정서에 싸여있던 그가 서울로 진학하며 산악부의 문을 두드린 것은 당연한 순서였을지 모른다.
“산이라는 환경이 가장 친숙한 것이었고, 또 문리대산악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고 전국 이곳저곳을 답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공부와 연결돼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이도원 교수가 학창시절일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개발 일색의 정책으로 환경생태에 대한 관심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서울대환경대학원은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당시 박 대통령이 깎여나간 산을 보며 복원할 방법을 찾으라는 지시와 함께 생겨났다는 풍문이 있을 만큼 당시 이 분야의 입지는 좁았다. 그런데 이 교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길을 찾지 않고 공부에 매달리게 된 것도 바로 산 때문이었다.
“대학원 재학시절 문리대산악회에서 아콩카구아 원정을 계획했습니다. 비용이나 행정문제 등 어려움 끝에 산에 가긴 했지만, 결론적으론 그 등반을 통해서 세상이 내 생각보다 훨씬 크구나, 공부할 것이 많구나라는 결심을 들게 했고, 당시 LA에서 사온 영어테이프를 들으며 유학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이도원 교수가 발표하거나 참여해 국내외에 내놓은 논문만 50여 편에 이르며, 저서는 26권이나 된다. 한 분야의 전문가다보니 같은 산행을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문리대산악회에서 추진했던 백두대간 종주에 참여하며 산악인들이 백두대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고 지난 2004년 산악회 50주년 사업으로 다녀왔던 무즈타그아타 등반과 실크로드 탐사에서는 중앙아시아의 마을에서 접한 생태환경을 연구하는 등 우리가 지나쳤던 사실들을 학자의 눈으로 다시 보고 전달하는 작업을 해왔다. 올해도 여름방학을 이용해 실크로드 탐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요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산과 인생’이라는 강의 중 한 과목을 맡고 있다. 등산을 가서 만나는 풍경이 생태학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짚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꼭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보다 많이 걷고 또 걷는 속에서 주변의 생태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는 것이 전부다. 그는 이를 ‘출근길 생태학’이라고 말했다.
산과 환경, 생태라는 말은 분명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지만 실상 산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두 단어에 대해 느끼는 간극이 크다. ‘환경’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개발’의 반대 , 또는 ‘진골’의 의미에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도원 교수도 환경학자, 또는 환경운동가의 두 가지 모습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요즘 4대강 개발이니, 케이블카 설치니 하는 갈등도 결국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고 봅니다. 과거 토목 위주의 개발정책과 이로 인한 인력 과잉으로 인한 세력 형성이 계속 이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으며, 그런 세력을 줄여나가려면 당장의 대립보다는 생태와 환경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 곧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제가 키운 제자들이 10년 후에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가꾸는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합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산꾼 교수님이 오늘도 버스나 자가용을 타지 않고 산을 넘어 출근하는 이유와 누군가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이유는 닮은 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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