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양준의 블랙다이아몬드 X-15 아이스바일
  • 등록일201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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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형이 구독하던 등산잡지를 보던 소년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책은 소년에게 하얀 벽에 매달린 사람들의 사투를 보여주었다. 벽에 매달려 오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리고 힘이 다해 미처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버린 사내들의 이야기는 소년에게 꿈을 만들어 주었다. '나도 벽에 오르고 싶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8년. 오산전문대 산악부에 들어간 다음부터였다. 그곳에서 벽을 오르는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전양준씨는 태국 프라낭 해벽을 등반한 후,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바로 파키스탄의 트랑고 타워를 오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기반이 없던 그에게 원정 등반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런 그를 끌어안은 것이 청악산우회였다. '빙벽등반 잘하는 산악회’로 알려져있던 청악산우회는 이제 훌쩍 커버린 소년을 빙벽의 세계로 이끈다.

우리나라 빙벽등반이 아직 열악하던 1990년대 초였죠. 장비가 너무 비싸서 차마 구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친구가 장비를 빌려주겠다는 거예요. 이 X-15 아이스바일이 그 때 빌렸다가 돌려주지 못한 장비죠.' 친구도 선배에게 물려받았다는 아이스바일은 신기할 정도로 전양준씨의 왼손에 맞았다고 한다. 본주인이 왼손 전용으로 썼던 바일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이런 이유로 바일을 끝내 돌려줄 수 없었다. 제1회 토왕성 빙벽대회 2등, 중국 하얼빈 국제빙벽대회 2등, 그 외 각종 빙벽대회의 루트 세팅을 하며 너무나 손에 익어버렸기 때문이다. 빌려온 물건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라 같은 제품을 구입해봤지만, 손에 맞지 않아 결국 새제품으로 돌려주었다고 한다.

즘은 빙벽등반 기술이 바뀌며 그에 맞는 신형 아이스바일을 쓸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손을 가장 닮은 아이스바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전양준씨. 그것은 자신의 '벽을 오르고 싶다’는 꿈을 빙벽으로까지 넓혀준 일에 대한 감사 표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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