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m급 14봉 등정한 김재수씨
  • 등록일201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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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코오롱스포츠·대산련 이사)씨가 지난 4월 26일 안나푸르나1봉(8091m)을 등정하며 8000m급 14개봉 모두를 올랐다. 5월 3일 귀국한 김재수씨는 시내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등반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특히 14개 봉우리 중 1993년 올랐던 초오유의 등정 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당시 돈이 없어 등반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다며, 올 가을 다시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거 예지 쿠크츠카도 1982년 브로드피크를 등정할 때 비용 문제로 등반허가 없이 올라 이후 파키스탄관광성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긴 했지만 국제산악계에서는 등정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기 때문에 전례에 비추어 볼 때 김재수씨의 등정 순위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김씨는 이번 등정으로 우리나라에서 5번째, 세계적으론 24번째 14봉 완등자가 된다.

김재수씨가 공개한 1993년 초오유 등정사진. 김씨는 당시 등정 자료가 모두 있지만 퍼미션을 받지 않고 올랐기 때문에 올 가을 한 번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은 대체로 김재수씨와 함께 14봉을 등반해오다 지난 2009년 낭가파르바트 등정 후 하산 중 실족사한 고미영씨와 관련된 질문들이 이어졌다. 김재수씨는 미리 준비해 배포한 자료와 같이 “14좌 등정은 고미영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며,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올랐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남극과 오세아니아 등 7대륙 최고봉 중 남은 두 군데를 마저 오를 것이며, 그건 예전부터 꿈이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와 함께 “일전에 밝혔던 고산등반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다음에 어떤 산을 오를 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뒤 김재수씨와의 일문일답을 요약한 것이다.
이번 14봉 등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제 8000m급 14봉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잃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 산악계의 이런 과도기에서 막차를 탄 셈이다. 지금도 14개봉을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후배들이 몇 있지만, 그들도 등정하고 나면 이제 우리 등반형태는 보다 다양해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노멀루트를 벗어나 높고 가파른 곳만을 찾아 극한의 방법으로 오르는 것만이 등산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히말라야 거벽등반에 있어 캡슐 스타일만큼 위험요소로부터 안전한 것이 없지만 우리 산악계에선 알파인 등반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는 면이 있다. 나는 나에게 맞는 등반 대상지를 찾아 내 방식으로 오르겠다.

초오유는 왜 다시 오르려고 하는가
언젠가 외국 산악인으로부터 “당신이 14봉 최단기록을 세우려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한 번도 최단기록 같은 건 생각지 않았는데, 외부엔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기록을 공표하고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실제로 내가 처음 8000m급을 오른 건 1990년 에베레스트다. 그렇게 보면 지금까지 21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고미영씨를 만나고 본격적으로 레이스에 뛰어든 것부터 시작하면 초오유를 다시 오를 경우 5년여로 최단기록이 되는 건 맞다. 고미영씨가 생전 14봉을 다 오르고 나면 함께 초오유를 오르자고 약속했었다. 초오유는 그가 처음 올랐던 8000m급이고, 나는 퍼미션 없이 등정했기 때문에 다시 오르고 싶었다. 안나푸르나 등정 뒤 외국 사이트(8000er.com)에서 초오유 등정과 관련한 자료를 보내달라는 독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이 공인기관도 아니고, 내가 그런 곳에서 검증을 받아야 할 필요도 못 느낀다.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더 이상 고미영을 팔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있던데
맞는 말이다. 이마운틴 게시판에서 그런 글을 읽었다.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뭘 해도 언론에 비추어질 때는 고미영이라는 이름이 따라다닐 것이다. 고미영은 나보다 훨씬 캐리어가 뛰어나고 인지도도 높은 사람이다. 그는 스포츠클라이머로 시작해 산악스키와 고산등반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국내 최고의 자리에 섰다. 생전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할 때마다 고미영은 자신에게만 오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늘 내게 미안해했었다. 지금 고사모(고미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활동이 활발하게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그분들은 처음부터 서로 알던 사이도 아니었다. 단지 고미영이라는 구심점 하나로 모였을 뿐인데 이렇게 활발히 활동하는 걸 보면 생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나 새삼 느낀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산등반을 해오며 나는 고미영 말고도 많은 후배를 잃었다. 고미영의 이름이 많이 나올수록 나는 다른 후배들의 유가족들에게 미안해질 것이다. 얼마 전 마나슬루에서 실종됐던 박행수를 찾았다는 뉴스를 보고 지난 K2에서 사고를 당했던 후배의 모친이 새벽에 전화를 했다. 당신의 아들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번 찾아뵙겠다는 말밖엔 못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을 일부러 두고 오고 또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K2는 마나슬루나 낭가파르바트와는 조건이 다른 곳이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초오유 등반 뒤에 14개 봉 풍경을 모은 사진집을 내고 싶다. 등반보고회도 열 계획이다. 내년 초 코오롱에서 계획하고 있는 남극 탐사 관련 프로그램에 함께 참가해 빈슨매시프도 등반하려고 한다. 후원사에 감사한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도 8000m급 14봉 등정을 전부 후원한 곳은 없던 것으로 안다. ⓜ

5월 3일 귀국해 당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8000m급 14봉 등정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재수씨. 그는 고미영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씨의 사고 후에도 등반을 계속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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