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딛고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한 송경태씨
  • 등록일201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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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숨결 사하라>라는 책이 발간됐다. 아프리카 대륙 사하라사막을 다녀온 여행기로 생각하고 책을 집어들 법 하지만, 앞표지에 쓰인 ‘이 책은 시각장애인용 바코드로 읽을 수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의아해진다. 무슨 여행기를 시각장애인까지 배려하며 만들었을까? 책을 펼치는 순간 그 의문점은 해결된다. <신의 숨결 사하라>는 여행기가 아닌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송경태씨의 이야기인 것이다.

송경태씨는 불의의 사고로 두 눈을 잃은 시각장애인임에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막마라톤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송씨는 29년 전인 1982년 7월 20일 빛을 잃었다. 당시 군에 입대해 신병교육을 받은 후 자대에 막 배치된 이등병이었던 그는 장마에 잠긴 탄약고를 청소하다 폭발사고로 눈을 다쳤다. 광주통합병원으로 후송되어 6개월의 입원 그리고 제대. 생각보다 빠르게 사회로 복귀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캄캄한 암흑생활의 시작이었다. 불편해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자 이웃집 할머니가 송씨를 보고는 “평생을 해주는 밥이나 먹고 방안에 갇혀 살아야 할 팔자구나”라는 말을 하여 마음마저 캄캄해졌다. 육신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버린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생명을 포기할 마음을 품었던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건 인근 성당의 신부 덕분이었다.
“어느 날 집 근처 성당의 신부가 찾아와 ‘자살’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라고 했어요. 어처구니가 없었죠. 죽으려는 사람한테 자살을 계속 외우라고 하다니…. 신부가 간 후 나도 모르게 자살을 중얼거렸죠. 그런데 ‘자살자살자살’이 ‘살자살자살자’로 바뀌더군요.”
이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지?’만을 고민했던 그의 마음에 ‘어떻게든 살아보자’라는 마음의 새싹이 돋아났다. 마음을 바꾸고 나니 삶에도 변화가 왔다. 장애가 있어 남들보다 앞서가지는 못해도 뒤처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달리기였다.
“눈이 안보인다는 핸디캡이 있으니까 게을러지기 쉬웠습니다. 목표를 잡고 스스로 채찍질하여 꾸준히 연습을 했죠.”
이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자기극복의 길을 걷던 그는 1999년 큰 발걸음을 내딛는다. 2002 한일월드컵 개최 홍보를 위해 미국대륙을 도보로 횡단한 것. 그리고 이 대장정에서 사막마라톤 대회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막 얘기를 듣자 중학시절 사하라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환상을 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가고 싶었다, 아니 꼭 가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이왕 가는 거면 또 하나의 한계를 극복하고도 싶었다. 그렇게 그는 사하라사막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신의 숨결 사하라>는 송씨가 2005년 참가했던 첫 사막마라톤대회의 기록이다. 이 대회 참가로 인해 그는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을 실현했다. 비록 사막의 풍경을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모래폭풍을 맞고 온몸으로 느끼며 마음속으로는 더 자세히 사막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대회 성적은 거의 꼴등이었지만 그에게는 완주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내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희열이 인생의 맛이고 희망이란 점을 깨달았다.
“희망은 고통을 동반한다는 걸 알게 된 대회였습니다. 자연에 겸손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죠. 달리는 도중 짐이 무거워 식량을 버리면서,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욕심 때문에 불필요한 짐을 지고 살았던 거죠. 비워서 공간을 만들어야 새롭게 채울 공간이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토록 염원했던 사하라사막을 가서 대회 완주에도 성공한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리하여 중국 고비사막, 칠레 아타카마사막, 남극 마라톤 대회를 참가해 모두 완주하며 ‘장애인 세계최초 4대 극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이라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남아프리카 나미브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도 마라톤으로 완주하며 마르지 않는 도전정신을 보여줬다. 마라톤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희망을 얻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존재로 거듭 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멈출 생각이 없다.
“올해에도 중국 고비사막 대회와 호주 캥거루사막 대회에서 초청장이 왔습니다. 물론 참가하여 도전할 생각입니다.”
그는 이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사막마라톤계의 유명인사다. 그러나 그의 활동무대는 사막만이 아니다. 송씨는 현재 한국산악회 전북지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산악인이기도 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암벽등반을 배웠고 캐나다 로키산맥에 있는 거벽 스쿼미시 치프봉을 등반하기도 했다. 사막마라톤은 송씨가 세상과 마주하는 한 방편일 뿐, 그의 목표는 새로운 세계를 모험하고 즐기는 것이다.
“사실 사막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떤 이들은 미쳤다고 합니다. 자기 돈 내고 고생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니 미친 게 맞죠. 허나 불광불득(不狂不得)이란 말처럼 미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삶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한국산악회 전북지부에서 팀을 꾸려 에베레스트에 올라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송경태씨는 자신의 장애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큰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깡마른 그의 몸 어디에서 이런 용기가 솟아나는지는 <신의 숨결 사하라>의 행간에 직접 찾아낼 일. ⓜ

눈이 보이지 않는 탓에 도우미와 함께 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지만 뒤처지지 않고 모든 대회를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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