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i taniguchi (케이 다니구치)
  • 등록일201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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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 대해 잘 모른다. 자기소개를 해 달라
어떤 소개를 말하는 건가? 이름이나 나이까지 말하라는 건가?

산에 다닌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난 아주 어릴 적부터 하이킹을 즐겨했다. 그걸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북알프스 등지의 산을 종주하는 걸 많이 했다. 전문등반은 졸업 후 친구에게서 배웠다. 왜 산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그전부터 우에무라 나오미를 매우 동경해왔다. 그러던 중 친구 한명이 매킨리 등반을 계획하며 나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고, 그게 첫 고산등반이었다. 매킨리는 우에무라 나오미의 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꼭 거기 가보고 싶었고, 단 하나의 목표였다. 노멀 루트로 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케이 다니구치는 우에무라 나오미가 다녔던 메이지 대학을 나왔다. 그는 산악부는 아니었지만, 함께 방한한 그의 친구 카주아키 아마노(카란카 북벽 등반으로 케이와 함께 황금피켈상 수상)가 메이지대학 산악부 출신이다.)

케이 다니구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줄곧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런 원론적인 대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렸다고도 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케이는 스폰서를 받는 사람은 클라이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Live Simply’라 적힌 헬멧의 글귀가 눈에 띈다.

그게 알파인 스타일을 추구하게 된 계기였나
나는 특별히 알파인 스타일 등반만을 추구해오지는 않았다. 다만 자이언트봉 노멀루트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 또는 위험보다 아무도 없는 미답봉에서의 시간이 더 좋기 때문에 새로운 대상지를 찾아 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노멀루트에서 산소를 사용하고 고정로프를 따라 줄지어 오르며 더 많은 위험요소를 만들어낸다. 마나슬루와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 본 그 장면은 마치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와 같았다.(케이 다니구치는 2006년과 2007년 노구치 켄의 청소등반대에 합류해 마나슬루와 에베레스트를 노멀루트로 산소를 사용해 오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게 나의 스타일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곳에 가는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여러 번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알파인 스타일에서 나에겐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을 뿐이다. 포터가 없고 셰르파가 없는 심플 웨이(simple way), 그게 내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
산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건 단 한번 뿐이다. 카메트에서 계속 화이트 아웃에 둘러싸여있는 가운데 눈사태 소리가 들릴 때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나는 죽지 않는다.(아메리칸 알파인 저널에 쓴 기록을 보면 케이는 벽상에서 비박 5일째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라고 중얼거리고 동료 카주야는 그에게 내려갈 것이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그는 곧 ‘아니, 올라가자’라고 대답한다.) 

대상지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나
주로 사진을 보거나 인터넷, 잡지 등에서 얻는다. 가령, 이번 카메트의 경우 2005년 쉬블링을 등반하러 갔을 때 찍어온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엔 외국 등반대에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재작년 개방되며 그곳으로 간 것이다.

등반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나
일해서 번다. 나의 직업은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기업 워크숍, 회의 등의 조력자)이지만 프리랜서로 일한다. 때문에 시간을 많이 낼 수 있고, 그런 부분은 회사에서 도와준다. 친구가 파타고니아에서 일하기 때문에 의류는 그를 통해 저렴하게 살수 있지만 다른 스폰서는 없다. 한국에서는 많은 클라이머들이 스폰서를 받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일본에서 스폰서를 받는 사람은 대부분 스포츠클라이머들이고, 고산등반가들은 2명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 클라이머들은 일본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스폰서를 받는 사람은 클라이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산악계의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전부 늙었다는 것이 문제다. 오래 전에 그들은 첨예적인 등반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과거엔 해외 등반을 가기 위해 일본산악회 등 단체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어디든 갈수 있게 됐다. 산악단체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런 단체에 전혀 가입하고 싶지 않다.

평소 어떤 훈련을 하는가
전혀 하지 않는다. 산에 다닐 뿐이다. 산에 가기 위한 훈련은 아니지만, 원래 사이클을 꾸준히 타왔다. 겨울엔 스키도 자주 탄다.

등반하는 중에 여자라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
항상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늘 화장실 문제가 닥치면 내가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황금피켈상을 받고 달라진 게 있나
없다. 여전히 돈이 없고, 여전히 자유롭다. 그러나 또한 많은 게 달라졌다. 나는 그때 처음 샤모니에 가봤고 많은 유럽 클라이머들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등반 트렌드를 배웠다. 발터 보나티나 더그 스코트를 만난다는 건 그전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황금피켈상 이후 그들과 교류하며 많은 클라이머 친구들이 생겼다.

강연 제의가 들어올 텐데
가끔 강연을 한다. 회사나 알파인클럽, 아이들에게도 한다. 대상이 클라이머일땐 등반 리포트를 하고, 보통 사람들에겐 다른 클라이머처럼 꿈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에 와선 뭘 했나
이번 한국 방문은 세 번째다. 2002년엔 인수봉을 등반했고, 2003년엔 토왕폭을 올랐다. 이번엔 계방산에 다녀왔고, 토왕폭을 등반할 계획이다. 계방산은 무려 180명이 함께 올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산에 가는 건 처음이라 매우 놀랐다.

한국 클라이머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과 일본은 매우 가까운데, 등반 스타일은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한국엔 알파인 스타일 등반이 매우 드물다. 알파인 스타일의 역사는 매우 길고, 일본에서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해오며 여러 과정을 거쳐 오고, 세대가 지나며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 만나면 매우 좋은 사람들이지만 산에서는 등정만을 위한 등반에 집착한다. 등정은 중요한 게 아니다.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등정보다 중요하다. 나는 등반에서 과정을 즐긴다.

올해 계획은 뭔가
작년엔 무릎을 다쳐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다. 올해는 알래스카, 페루, 티베트 등지를 등반할 계획이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새벽, 기자는 그와 함께 토왕폭에 갔다. 케이 다니구치는 불안하게 얼어붙은 고드름 사이를 노련한 몸짓으로 올라갔다. 그는 상단까지 등반하고 싶어 했지만 빙질이 불안하고 돌아갈 시간이 늦어진다는 설명에 수긍했다.
숙소로 돌아온 후 카메트 남동벽 등반에 관한 강연이 예정돼 있었지만, 갑작스런 토왕폭 조난사고로 이후 행사가 취소돼 아쉽게 그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사고 수습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그가 나에게 왔다. 이번 사고에 대해 <산과 계곡>과 <록 앤 아이스>에 칼럼을 기고하고 싶다며 기자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았지만 그의 질문은 집요했다. 정상에 대한 집착이 이번 사고를 부른 게 아니냐, 한국 클라이머들은 용감하지만 평소 자력구조 기술을 염두에 두지 않고 등반하는 것 같다. 히말라야에서도 한국 등반대와 셰르파의 사고가 많다고 들었다. 많은 클라이머들은 항상 오르는 것밖에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게 가장 문제라는 그의 말에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

케이 다니구치는 등정은 중요한 게 아니다.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등정보다 중요하다며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등반에서 과정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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