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대의 등산칼럼 - 낙석, 노년기 화강암의 심술
  • 등록일201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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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석, 노년기 화강암의 심술
이용대의 등산칼럼

 
산악인들이 즐겨 오르는 인수봉의 옛 이름은 부아악(負兒岳) 이다. ‘부아(負兒)’를 이두(吏讀)로 읽으면 ‘불두덩’ 즉 남성 성 기다. 인수봉이 남근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 는 불임여성이 이 봉우리에 빌면 아기를 얻었다는 풍습이 전해 오고 있으니, 이는 고대 성기숭배 사상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생산과 풍요의 상징인 인수봉이 요즘 젊은 생명을 수없 이 앗아가고 있다.

이상고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때 이른 봄 더위가 계속되 고 있다. ‘3월 벚꽃’이 피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지만 봄이라고 긴장을 풀고 허점을 드러내놓기엔 아직 이른 계절인 듯하다. 암벽등반이 시작된 지난 3월 중순의 인수봉은 공포 그 자체였 다. 단 한 차례의 낙석이 두 사람을 상하게 했으니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무기력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인수봉의 오아시스 주변에는 30여 명의 산악 인들이 몰려 따사로운 봄 날씨를 즐기며 등반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오가 가까웠을 무렵 청천벽력 같은 굉음을 내며 인 수봉 변형A코스 상단에서 500kg 크기의 바위가 굴러 떨어지 며 사방으로 바위 파편이 튀었다. 순식간에 주변은 아비규환으 로 변했고, 미처 낙석을 피하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은 중상을 입 었고, 다른 한 명은 목숨을 잃었다.

낙석은 바위를 지탱하던 아래 부분의 얼음이 녹아 지반이 약해 진 바위덩이가 중심을 잃고 굴러 떨어지는 자연현상이다. 기온 이 높아지는 해빙기나 우기에 자주 발생하며, 이때 낙석통로에 사람이 노출되어있다면 인명사고는 피할 길이 없다. 산에서 해빙기에 자주 발생하는 낙석사고는 어제 오늘만의 일 이 아니다. 잊을만하면 일어나는 일이니 숨어있는 위험을 안고 산에 오르는 산악인들의 자중자애(自重自愛)를 바랄뿐이다. 등산은 거친 대자연과 마주하는 활동이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험과 직면할 수 있고 죽음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룰 수도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등산의 세계다. 긴장을 푼 순간 어떤 일이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1%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것이 등산이며 온전한 모습으로 출발점으로 돌 아오는 것이 등산의 완성이다.

낙석은 등반의 달인이라 해서 피해가는 법이 없다. 프랑스의 유명 산악인 장 쿠지(Jean couzy)도 낙석에 맞아 희생됐다. 그 는 1950년 인류 최초로 8000m급의 안나푸르나를 초등한 프 랑스 원정대의 일원이었으며, 1955년 마칼루를 초등한 뛰어 난 알피니스트였지만 알프스에서 등반 중 낙석 한 방에 화려했 던 등반활동을 접고 생을 마감한다.

그동안 국내산에서도 여러 차례 낙석사고가 일어나 많은 사 람이 희생되었다. 1976년 설악산 울산암에서 일어난 고려대 와 홍익대 팀의 낙석사고는 승용차 크기의 암괴가 떨어져 2명 이 목숨을 잃었고 1명은 발가락을 절단하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한국조난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형 사고였다. 이 사고 의 직접원인은 침니 양쪽 벽 사이에 끼어있던 직경 20cm크기의 쐐기돌(chock stone)을 제거하자 한 쪽의 바위가 균형을 잃고 기울면서 낙석을 일으킨 것이다. 승용차 크기의 큰 바위 가 100m이상을 굴러 떨어지자 수 백 개의 바위파편들이 쏟아 졌다. 당시 암반이 붕괴하는 진동음은 속초시내까지 들렸다한 다. 이날 고대 팀이 낙석을 일으킨 사고루트 옆쪽 침니를 오르 고 있던 홍대 팀의 등반자는 낙석 파편들이 침니 속으로 쏟아 져 들어와 돌덩이와 함께 추락하면서 낙석더미 속에 파묻혀 사 망했다. 승용차 크기의 암반이 붕괴된 이 사고는 낙석의 규모 로 보거나 인명피해의 숫자로 보아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되 고 있다. 당시 처참했던 사고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고대 팀 의 선등자 김윤기는 암벽등반에 심취해있던 산악인이었지만 사고의 상흔을 치유치 못한 채 산과 결별한다.

 
1987년 7월에는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강풍과 폭우가 몰아치 는 일몰 후의 악천후 속에서 울산암 후면(미시령 쪽)쪽으로 하 강 중이던 충남대 산악부원 3명이 낙석사태에 쓸려 전원이 목 숨을 잃는다. 이들이 선택한 하강지점은 해풍의 영향으로 침식 작용이 빠르게 진행되어 암질이 불안정한 잡석지대로 낙석의 확률이 높은 장소였다. 이들의 시신은 실종 이틀 뒤 돌과 흙더 미 속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은 일몰 후에 발생하였기 때문에 한 사람의 목격자도 없었다. 이들이 왜 암질이 불안정한 울산 암 후면을 하강루트로 선택하였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 사고의 직접원인은 폭우에 의한 흙과 바위의 침식이 사태를 유 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궁이다.

1991년 봄에는 인수봉 의대길 테라스에 걸쳐있던 큰 바위가 붕괴하면서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또한 1992년 가을에는 한국 스포츠 클라이밍의 기린아로 급부상했던 여성 산악인 차 선영이 인수봉 남측에서 휴식 중 아미동길 상단에서 떨어진 것 으로 추측되는 야구공 크기의 낙석에 맞아 희생되었다. 그녀는 1992년 열린 전국규모 암벽등반대회에서 모두 우승, 명실상 부한 한국 여성 스포츠클라이밍계의 1인자였다.

2001년 3월에는 인수봉 대슬랩에서 기초 암벽등반 훈련을 하 던 광운대학교 산악부 1학년 여학생이 오아시스 위쪽 급사면 에 얼어붙어있던 얼음과 돌이 높은 기온으로 녹으면서 쏟아져 내리자 낙석더미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고 나머지 2명은 경 상을 입었다.

산에서의 낙석은 공포 그 자체다. 올 겨울 설악산 천불동 오련폭포 위에 설치된 철제계단을 삽시간에 파괴한 것도 낙석 때문 이다.

유독 인수봉에서 낙석사고가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것은 사람들 이 많이 오르기 때문이다. 인수봉은 1억 3천만 년 전 중생대 지 각 변동기에 굳어진 마그마가 지표로 솟아오르면서 생긴 노년 기 화강암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잠재된 낙석의 위험이 많다. 예전에는 희귀했던 사고들이 요즘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것 은 풍화 침식에 의한 불안정한 바위가 여러 곳에 숨어있기 때문 이다.

낙석은 암벽등반 대상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의 왕래가 많은 일반등산로에서도 발생한다. 1978년 3월 정오 무렵 도봉산장 위쪽 등산로에서 일가족 3명이 망월사를 향해 등산을 하던 중 계곡 위쪽에서 가마니 크기의 바위가 앞서 가던 딸을 향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이를 목격한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딸을 밀쳐내고 자신은 피하지 못한 채 바위에 깔려 목숨을 잃은 살신모정(殺身母精)의 사고도 있었다. 친딸을 포 주에게 팔아넘기는 인면수심의 어머니가 있는 요즘, 딸의 죽음 을 대신한 어머니의 죽음은 희미해져가는 모성을 되새겨준 감 동적인 사건이었다. 진정한 모성은 삶과 죽음이 맞닥뜨린 자리 에서도 바른 길을 택한다. 이런 일련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마치 조난기를 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런 재앙은 자연만 탓할 일이 아니다. 19세기 말 극적인 등산 가로 이름을 떨친 오이겐 귀도 라머(Eugen Guido Lammer) 가 “낙석과 같은 외적위험도 등반의 일부”라고 말한 것처럼 산 악인이라면 낙석도 등반의 일부로 보고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 하다.

암벽등반 중에 일어나는 낙석사고는 자연적인 요인보다는 인 위적인 실수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등반도중 불안정한 바위에 체중을 싣거나 잡아당기는 경우와 잔돌이 쌓인 스크리 (풍화퇴석) 지대에서 로프를 조작하거나 회수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한다. 특히 바위 틈새에 박힌 쐐기돌이나 큰 바위를 지 탱하고 있는 버팀돌을 제거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한다. 낙석사 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로 낙석예상지역을 판단 하는 안목이 중요하다. 이번에 낙석이 발생한 지점도 평소 낙 석발생의 개연성이 높았던 지점이다.

자연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낙석은 계절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 한다. 대체로 해빙기와 우기에 많이 발생한다. 이런 시기에는 협곡. 산비탈의 풍화퇴석지. 폭우로 지반이 약해진 곳은 피해 야한다. 하루 중 낙석의 위험이 가장 높은 시간대는 기온이 상 승하는 정오 무렵이다. 이시간대는 밤사이 결빙된 얼음이 녹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 산에서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 침이 없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사고사례를 거 울삼아 올바른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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