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산악구조대, 제주산악안전대
  • 등록일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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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산악구조대, 제주산악안전대
한라산 등산객들의 안전을 지켜온 반세기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산악구조대인 제주산악안전대는 ‘구조대’ 대신 유일하게 ‘안전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제주산악 안전대의 대장인 오경아씨는 “구조는 사고가 일어난 뒤에 조치하 는 것”이라며 “제주산악안전대는 그 전에 사고를 막자는 의미에서 안전대라고 이름을 지었다”라고 설명하였다. 제주산악안전대 창립 당시, 산악회가 없었던 제주도에서 제주산악 안전대의 창립은 곧 제주 산악운동의 태동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제주도에 산악회가 생기기도 전에 산악안전대가 먼저 창 립된 것은 한라산 조난 사고가 그만큼 많았으며, 산악구조 대의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한국산악회가 1946년 2월과 1948년 1월에 한라산 적설기 등반대를 구성 하여 두 차례 한라산을 등반하였지만, 1948년에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한라산은 약 6년 간 입산 통제됐다. 그러다 가 1954년 9월 21일에 한라산 입산 통제가 해제되면서부 터 한라산 등반이 시작되고 조난사고가 빈번히 일어났다.

제주도적십자는 한라산 조난사고에 대한 대책 마련의 필 요성을 느끼고, 1960년에 적십자 본사로부터 40만환을 지 원받아 산악안전대 구성을 준비한다. 그러나 제주산악안전대가 창 립되기 전인 1961년 1월에 서울대학교 법과대 적설기 한라산 등 반대 대원 이경재씨가 탐라계곡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났다. 동시 에 고려대와 경희대 두 등반대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이에 당 시 한국산악회 회장이었던 홍종인씨는 공군 항공기를 동원하여 구 조대를 파견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한라산 조난 사고에 대비하자 는 뜻을 가진 제주 산악인들이 모여 그해 5월에 제주도적십자 산하의 제주산악안전대를 창립했다. 김종철, 부종휴, 안흥찬, 고영일 등 9명의 창립 대 원으로 출발했으며, 김종철씨가 초대 대 장으로 선출됐다. 그 뒤로도 뜻 있는 제주 산악인들이 모여 창립 2개월 만에 대원이 27명이 되었다.

제주산악안전대는 사고 이전에 한라산의 정보를 알리고, 사고 요인을 방지하는 안 전 계도 활동을 해나갔다. 창립한 해 8월 1 일부터 5일까지 제1회 한라산등반훈련을 실시하여, 한라산 등산로에 위험 표지판 과 등산로 안내판, 응급구호소 등을 설치 하였다. 1962년 10월에는 무지개 등산이 라는 산악 행사를 후원하여, 한라산에 7 개의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했다. 당시 무 지개 등산에는 180명이 동원되었으며, 이 때 제주산악전대 대원인 고영일씨가 인 솔했다.

 
한편으로는, 1963년 6월 16일에는 조난당한 ‘여원사’라는 잡지사 의 두 기자를 구조하여 제주산악안전대의 위상을 높였다. 조난 이 틀만에 산악안전대를 만나 구조된 두 기자는 제주신문을 통해 제 주도산악안전대에 고마움을 전하기도 하였다. 이 경우는 등산 장 비도 갖추지 않은 데다가 산행 가이드도 없이 산행을 했기 때문에 일어난 조난 사고였다. 그러나 1960~70년대에는 전문 등반대들 의 조난 사고도 빈번했었다. 1967년 7월에는 인하대와 한양공대생 의 산악부원 10명이 하산 중 조난을 당했다가 3일 만에 구조되는 사건도 있었으며, 비슷한 시기인 1968년 1월에는 이화여대 등반대 6명이 등반 도중 눈보라를 만나 조난을 당했다. 이때 제주산악안전 대 대원 안흥찬씨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들 모두를 구해달라” 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화까지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고가 많았던 60~70년대에 비하면 지금은 한라산에서 큰 조난 사고가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여전히 산악안전대의 역할은 세월이 지나도 줄지 않는다. 현재 제주산악안전대원은 30명, 이 중 10명은 종신대원으로 실제로 구조 활동을 나서는 인원은 20명이다. 이들 모두는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조난 신고가 들어오면 지체 없이 출동한다.

“주로 조난 신고는 등산객들이 하산하는 시간대인 저녁이거나 등산객이 많은 주말 이어서 대원들 거의가 출동을 해요. 119에 구조헬기를 요청한다 해도 사람을 우선 찾 아야 하잖아요.”

오경아씨는 “근래에는 예전 같이 큰 조난 사고는 없는 편이지만 다소 황당한 조난 사 고가 많다”고 이야기를 풀었다.

“한 번은 일행 한 명이 산행에서 뒤처져 저 녁때까지도 내려오지 않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수색 작업에 나섰 어요. 아무리 찾아도 조난자가 발견되지 않던 중에 난데없이 조난 자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어요. 일행들에게 왜 안 오냐는 연락이었 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조난자로 신고된 사람이 먼저 서울로 올라 가 있었던 거예요. 얼마 전에는 무속 행위를 하러 산에 간 할머니가 조난됐다는 신고를 받고 밤새 수색 작업을 벌였는데 결국 못 찾다 가 아침이 되어서 할머니 스스로 산에서 내려온 일도 있었어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조난 사고에도 오경아씨는 “만에 하나의 경 우가 있기 때문에 수색을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서 옛날만큼 큰 사고는 많지 않아 요. 하지만 뉴스에는 실리지 않는 조난 사고가 많아요. 올해 초만 해도 저체온증에 걸리거나 탈진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들을 대 피소로 이동시켜 응급조치시켜서 하산을 시켰죠. 대부분 한라산을 쉽게 생각하고 보온의류와 식수 등 준비하지 않아서 생긴 사고죠.” 오경아씨는 “제주도는 바람이 세기 때문에, 기온이 영상이더라도 체감온도는 영하로 떨어질 수 있다”며 “산행 전에는 반드시 등산 장비를 갖추고, 산악 정보를 숙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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