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대 칼럼 - 가을 산의 단상
  • 등록일201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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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의 등산칼럼
가을 산의 단상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엔 가을이 가득 차있다. 유난히 무덥던 올 여름도 깊어가는 가을 저편으로 꼬리를 감추고 있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봄‧가을이 짧아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가을은 성큼 단걸음으로 우리 앞에 다가와 서있다.

흔히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 말이 있다. 계절 탓인지 모르겠지만 짙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런 계절에는 간단한 행장차림에 배낭 하나를 챙겨 메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으로 향하는 것이 좋다. 목적지를 따로 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호젓한 산길을 혼자서 걸으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가을 산을 온몸에 담아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가을산은 풍요와 쓸쓸함이 공존하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알차게 영근 산밤과 잣, 머루와 다래, 도토리와 개암열매 등 온갖 먹거리가 결실을 맺는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찬 서리에 고개 숙인 늦가을 산구절초의 초라한 모습이나 가을걷이 끝난 들판의 텅 빈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수많은 문학작품 가운데 가을을 주제로 다룬 글은 많다. 옛날부터 사계절 중 가을 산을 소재로 다룬 글들이 많았다. 고려의 문신 김부식은 가을 산을 주제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속된 사람이 오지 않는 곳(俗客不到處) / 올라와 바라보면 마음이 트인다(登臨意思淸) / 산의 모습은 가을이 더욱 좋다(山形秋更好)’라고 가을 산을 시제로 삼기도 했다.

일본 산악계의 선구자 오시마 료오끼치(大島亮吉)는 “늦가을 산봉우리는 덕스러운 늙은이의 모습, 어찌 그리 품위 있고 꾸미지 않은 얼굴을 은빛으로 빛내고 있을까”라고 했다. 억새꽃 하얗게 부풀어 빛나는 얼굴의 모습을 그리 표현한듯하다.

그는 또 “낙엽을 밟는 소리만큼 마음에 와 닿는 소리도 없다”고 했으며, “늦가을 마른 풀 덮인 양지바른 언덕은 공상의 날개를 펴는 장소”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가을 산의 단상을 맛깔스런 글로 남겼다.

짧은 산문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독일 작가 안톤 슈낙(Anton Schinack)은 ‘우리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서정 짙은 수필에서 “추수가 끝난 만추의 텅 빈 밭을 바라보면 마음이 쓸쓸 해진다”고 했다.

안톤 슈낙은 필자와 같은 시대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쓴 수필은 반세기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었다. 지금 그의 글을 대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칠십이 넘어 다시 읽는 안톤 슈낙의 수필은 구절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오십년 전 젊은 날에 밑줄을 그었던 구절이 그때와 똑같은 감동으로 되살아나고 있으니 이 또한 새로운 감동이라 할 수 있다. 교정의 은행잎이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던 가을날 국어선생님은 애조를 띤 음성으로 이 수필을 읽어 주시며 제자들을 감동케 했다. 오십년 전 은사의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되살아난다.

지금 산 아래는 갖가지 일로 어수선하지만 산에 오르면 언제나 정적만 흐른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잔가지 끝에 매달린 누런 잎들을 털어내면 낙엽이 마른 소리를 내며 흩날리고 벌거벗은 나뭇가지가 일렁일 뿐 주변이 갑자기 심연처럼 괴괴하며 정적 속에 묻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 시선을 주니 겨울준비에 바쁜 다람쥐 한 마리가 도토리를 입에 물고 숲속으로 달아난다.

산 아래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산 아래 일들에 무관심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산에 오르면 그 자신이 산이 되어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이 지닐 수 없는 고차원의 의식을 갖게 된다.

최근 보기도 듣기도 싫은 크고 작은 뉴스들이 매 시간마다 TV 화면을 어지럽히고 있다. 어느 고위공직자의 혼외자 의혹, 의류업체 회장의 신문지 폭행사건, 정상회담 회의록 논란, 한 산악인의 평전을 둘러싼 저자와 원정대원 사이의 치열했던 법정공방 등 산 아래는 이렇듯 어수선하지만 산은 언제나 조용하다. 세상은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라며 사생결단하고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싸우며, 어느 한 쪽이 죽고 나서야 싸움은 끝난다. 이렇다 보니 삶의 질이 나날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고 메말라서 재미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암벽등반 또한 가을 바위타기가 더 감칠맛이 난다. 여름은 더워서, 겨울은 추워서 그 맛이 별로이지만 가을철 암벽등반은 그 손맛이 별나다. 오감을 자극하는 차가운 가을바위의 느낌은 한층 기분을 고양시킨다.

장호(章湖) 시인의 표현처럼 “손바닥을 얹으면 같이 죽자던 여인의 알몸” 같은 싸늘하고 정겨운 감촉이 느껴지는 가을 바위는 다른 계절에 비해 짜릿한 전율을 더해준다.

얼마 전 필자는 혼자 쇠귀고개를 넘어 장현까지 산길 이십 여리를 왕복한 일이 있다. 참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소나무가 산길 옆으로 울창하게 드리워진 호젓한 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길옆에 피어있는 풀꽃을 살펴보는 여유마저 얻게 된다.

하늘빛을 담아내는 층꽃나무, 범부채, 벌개미취, 늦가을 찬서리 맞으며 피어나는 구절초와 갖가지 풀꽃들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풀꽃 이름은 몰라도 그만이다. 꽃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풀꽃이름은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산길을 걸으며 꽃을 볼 때 그 느낌마저 다를 수 있다. 이름 모를 풀꽃을 보고 그냥 지나치면 영영 그 이름을 알 수 없게 된다. 꽃 이름을 알기위해 식물도감을 뒤지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풀꽃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과 친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 모를 꽃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세상의 모든 꽃에는 이름이 있다. 꽃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본인의 무지일 뿐 이름 없는 꽃이란 없다. 가을은 무어라 해도 단풍과 풀꽃의 계절이다. 이제 곧 단풍도 풀꽃도 모두 스러지면 가을마저 스러진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풀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호젓한 산길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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