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을 샤모니에서 살고 있는 조문행씨
  • 등록일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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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을 샤모니에서 살고 있는 조문행씨
“한국인들에게 도움 받은 만큼 갚으며 살고 있어요”

 
알피니즘의 발상지이자 세계적 산악도시인 샤모니, 유럽 최고봉 몽블랑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가 있다. 조문행씨가 사장인 알펜로제(Alpenrose)다. 그는 미술공부를 위해 1985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을 하다가 박사 과정을 진행 중이던 1991년 샤모니로 옮겨왔다.

“처음 샤모니로 오게 된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었어요. 공부를 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스위스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샤모니로 발령이 난 거죠. 일을 끊을 수 없어서 공부를 포기하고 왔다가 지금까지 살게 됐어요.”

초기 2년간은 여행사 일을 계속 했다. 그 후 개인 사업을 벌여 여행사를 차리고 스포츠용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열어 샤모니에서의 삶을 이어왔다.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도 잠시 열었고, 지금의 숙소는 2004년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20여 년. 샤모니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중 ‘터줏대감’이라고 불릴만한 세월이 지났다.

“가끔 시내에 나가면 아는 척하기 바쁠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어요. 동네 꼬마였던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오래 살긴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죠.” 관광도시인 샤모니는 여름 성수기인 6~9월과 스키시즌인 겨울이면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알펜로제도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전세계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북한 사람만 빼놓고 각 나라 사람들이 다 지나갔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로 인해 연출되는 특이한 풍경이 있다. 투숙객들이 자유롭게 조리를 할 수 있도록 개방한 주방에서다.

“숙소 내에서 운영하는 식당도 있지만 가난한 여행자들의 주머니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주방을 만들었죠. 그랬더니 어느 프랑스인이 주방이 미라클이라고 하더라고요. 별별 나라의 사람들이 다 와서 각자의 음식을 만들며 엉켜 사는 게 재미있다는 거죠.”

샤모니 내에 주방을 오픈하는 숙소가 알펜로제만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조문행씨의 넉넉한 인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문행씨는 알펜로제를 한국에 굳이 알리지 않고 있다.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보니 알리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이곳이 한국인들만 찾는 숙소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미 한국의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알펜로제가 익히 알려져, 시즌이면 등반이나 산악스키를 즐기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결과는 우연히 맺어진 인연에 의한 것이었다.

 
“스위스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한국산악회에서 몽블랑을 오르려는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단체 관광객이 아닌 산 다니는 사람들과의 첫 만남이었죠. 산은 좋아하지만 트레킹이나 즐기는 수준이니, 몽블랑 같은 곳도 올라가는구나하고 감동을 받았죠. 그래서 물이나 과일 등 필요한 물품을 사서 올라가기도 했어요.”

샤모니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특수성이 알려지자 그 이후부터 산 다니는 사람들이 샤모니에 오면 조문행씨를 찾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언어가 통하니 불어에 약한 한국인들이 도움을 받기도 편했고, 산악사고 같은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면 구조대의 얘기를 들어 유족들에게 연락하는 일도 했다. 그래서 대한산악연맹에서 샤모니 연락책을 맡지 않겠냐는 제안도 했다고.

“언제까지 샤모니에서 살지도 몰랐고요. 산 쪽 일은 아는 게 없으니 가능한 선에서 적당히 돕는 정도만 하기로 했어요. 사실 저는 여기서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니 시간이 없어서 모든 걸 도와줄 수는 없거든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나 처리를 돕고 있습니다. 제가 샤모니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여행사를 찾아준 산악인을 비롯한 한국 사람들 덕분이니 받은 만큼 갚아야한다는 생각이죠.”

조문행씨가 오랜 시간을 샤모니에서 지내며 놀라운 점은 산을 다니는 한국인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등반하는 사람이 많았고 최근에는 트레킹 손님도 많이 오지만, “와도와도 새로운 사람이 온다”며 한국에 산을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걸 느낀다고 한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조문행씨에게 샤모니는 “시간 여유가 있어야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라고 말한다. 시간ㆍ경제적으로 쫓기면 너무 삭막하지만 정신적 여유가 있으면 할 일도 많고 너무나 좋다는 것. 그만큼 그는 샤모니에 정이 들었다.

“파리에서 공부를 했다보니 큰 도시를 좋아했어요. 샤모니에는 문화생활이 없는 게 아쉬웠죠. 파리 사람들은 반대로 말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 들어 그 말이 이해되고 있어요.” 조씨의 향후 계획은 일단 알펜로제를 개보수하여 규모도 늘리고 보다 좋게 꾸미는 일이다. 매년 비수기를 이용해 조금씩 고쳐 5년 내에 완성할 계획. 그날이 오면 샤모니를 찾는 한국인들도 그 덕을 톡톡히 볼 예정이다. 하지만 그때는 조문행씨가 샤모니에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재 고등학생인 아들의 거취에 따라 다른 곳에서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이 공부를 하고 싶든 다른 일을 하고 싶든 그에 맞춰 움직일 생각이에요. 당장 내 앞에 필요한 것만 생각하고 살자는 주의거든요. 하지만 그에 따라 샤모니를 떠난다 해도 이곳에 지낼 공간은 남겨놓을 생각입니다. 20년을 넘게 살아오며 이곳이 좋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소탈한 웃음과 넉넉한 인심을 지닌 조문행씨의 알펜로제를 찾아가고 싶으면 홈페이지(http://chamonix-alpenrose.com/)를 이용할 수 있다. 전화보다는 이메일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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