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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 10월호] 김PD의 너만 산이냐, 나도 산이다
마운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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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5.09.12 |
삼천리 방방곡곡이 금수강산인 아름다운 우리나라. 그 가운데에서 산은 국토의 70%를 차지하고 산의 개수만 4,400개에 이른다. 그야말로 산의 나라인 것이다.
산은 사계가 모두 아름답다고 하나 거기에서도 꼽으라면 아마도 “가을의 산이 가장 아름답다.”라고 말할 것이다. 필자도 물론 같은 생각이다. 이 가을에 어느 산에 가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때가 찾아왔다.
화려한 단풍으로 맵시를 뽐내는 명산.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에 끼어 단풍구경을 하는 건지 사람구경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혼을 빼앗긴 경험은 한 번씩 있을 것이다. 올 가을엔 오직 산만 즐길 거야 마음먹은 후 다음 단계는 “그럼 어느 산을 가야하지?”하는 선택장애가 올 즈음에 단호히 필자는 무명산에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 떠드는 소리 대신 자연의 소리가 귀에 들락날락하고 사람이 스쳐가는 대신 청량한 산 바람이 온 몸을 휘감아 돈다. 산과 나의 일대일 만남.
필자는 이런 무명산의 매력에 빠져 1년 넘게 매주 쉬지 않고 산행을 하고 있다. 또 그 산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필자가 가을에 갔던 기억에 남은 산을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포천 종자산. 그 이름 특이하다. 종자? 맞다 그 종자(種子)다. 어떤 노부부가 아이를 얻기 위해 이 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리고 아들을 얻었다 해서 씨종(種)에 아들자(子) 종자산(種子山)이 됐다는 전설이다.
산은 해발 642.8m로 중간 높이 정도이나 정상부에 바위가 많아 제법 힘을 빼앗아 간다. 산 아래 중2마을에서 올라가 정상을 만나고 그대로 내려오는데 약 5km에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제 채비를 마쳤으니 종자산으로 들어간다. 마을에서부터 키큰 플라타너스, 미루나무가 황금빛으로 단장하고 그 속에서 재잘거리는 새소리가 영롱하다. 시작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종자산 다리에 해당하는 산자락은 밤나무 밭이다. 밤이 풍년을 맞은 듯 산길에도 밤송이가 즐비하다. 종자산 이름을 닮아 이렇게 밤 종자도 많은가보다. 산의 허리에 닿으면 이제부터 단풍의 공간에 접어든다. 가을빛을 받은 잎은 오색찬란한 보석처럼 빛을 한없이 발산한다. 참으로 곱다 고와. 감동하는 동시에 나의 퇴색된 마음도 그 빛에 산란되어 새 마음이 자리 잡는다. 길은 이제 바윗길로 접어 들었다. 이제까지 산이 준비운동을 시킨 것이다.
종자산은 허리를 중심으로 아래는 부드러운 흙의 육산(肉山), 위는 거친 바위의 골산(骨山)이다. 바위와 소나무, 단풍이 어우러진 새로운 모습의 종자산이 펼져진다. 커다랗게 패인 바위아래에 도착했다. 바로 종자산의 이름을 낳게 한 바위굴성이다.
그 이름처럼 거대한 바위성안에 굴이 있다. 이곳에서 노부부가 기도를 드려 아이를 얻었다. 굴 위에서 떨어지는 석간수로 정안수 삼았을 것이다. 필자는 석간수를 손에 담아 “오래도록 건강하게 산행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드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바랄게 있겠는가?
바위굴성을 빠져나와 능선에 닿으면 사람은 갈 수 없는 종자산의 깊은 협곡이 눈앞에 다가온다. 보는 순간 감탄사가 나온다. 금강산의 한 부분을 가져다 놓은 듯 기암과 그 틈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한 폭의 산수화다. 거기에 물든 잎들은 보석같이 박혀 빛나고 있다.
불현 듯 떠오르는 생각. 나는 이 큰 세상에서 어떤 보석으로 빛나고 있을까? 빛이 나긴 할까? 지나온 삶을 산의 거울 앞에 세워본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 숙제는 미루고 노는데 전념한 나머지 마지막 며칠을 남기고서야 벼락 치듯 하다가 결국은 다 하지 못하고 지난 한 달을 후회했던 기억. 그리고 다음 방학 때 또 반복되고. 지금도 나의 생을 이렇게 하고 있지 않은지 마음속으로 복기하며 올라간다.
아! 이제 정상이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회오리치듯 몸을 감싸면 이제야 달아났던 기운이 다시 채워진다. 눈 아래는 한탄강이 너울너울 흘러가고, 눈앞에는 산들이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일망무제(一望無際) 막힘없이 열려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이 맛에 산에 오는 거야!
온 산이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그 중에 종자산은 이름 없는 작은 보석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 작은 빛이라도 발하면 그걸로 족하지. 처음부터 원대한 꿈을 시작하여 실패하고 좌절하기보다 아주 작은 일을 이뤄가며 맛보는 성취감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때에 나를 다독여주고 희망을 주는 고마운 산. 산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그곳에 들어간다.
해는 어느덧 서산에 잠자리를 펼쳤다. 하늘도 산도 금빛을 수(繡)놓은 가을이다.
<좋은 생각 10월호, 김PD의 너만 산이냐 나도 산이다> |